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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신앙의 대상 일원상

상징적 표현으로 부처님이나 하나님, 진리, 도, 태극과 같은 궁극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말로 표현하면 일원상이요 형상으로 표현하면 둥그런 원으로,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모든 성자들의 마음이며, 모든 중생의 본래 청정한 마음으로 우주만유의 생성 변화를 주재하지만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 도 없습니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모든 성자들의 마음이며,
모든 중생의 본래 청정한 마음으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를 동그런 일원상으로 그려 주시며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비유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원불교인들은 이 일원상 진리를 닮아가기 위해 정진 적공하고 있습니다.

신앙

원불교 신앙

원불교의 신앙은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이고 우주만유 삼라만상이 부처임을 믿고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에 보은 감사생활을 하자는 것이며,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지극히 밝고 공변되어서 가히 속이거나 어기지 못함을 알자는 것이며, 죄복과 인과를 주재하는 사은의 내역을 알아 각각 그 당처에 따라 실제적 불공을 하자는 것입니다.

교도의 신앙생활

1. 네 가지 크신 은혜
대종사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 베푸는 모습을 본받아서, 우리도 늘 감사하는 생활, 보은하는 생활, 복 짓는 생활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을 짓지 않고는 복을 받을 수 없고 은혜를 입고 보은을 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보은을 하고 복을 짓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낙원인 것입니다.

2. 평등 사회를 만드는 길
대종사께서 보은자가 되기 위한 네 가지 가르침을 주셨으며 이 네 가지 가르침을 우리는 사요(四要)라 부릅니다. 사요에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가 있으며 이 사요는 정신개벽을 위한 사회 불공법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고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이상적인 평등 세계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평등 사회를 만드는 길

3. 생활 속에서 불공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를 올리고 기도하는 것을 진리불공이라 하고, 이 세상 모두가 부처님이니 우리에게 죄복을 주는 직접적인 권능이 있음을 믿고, 항상 공경하고 받드는 것을 실지불공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빌거나 죄를 참회할 때에는 먼저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나 기도를 하고, 아울러 내가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부처님 모시듯 대해야 합니다.

수행

원불교의 수행

원불교의 수행은 일원상 진리를 닮아가고 그 진리에 합일하여 개인의 인격을 완성해 가자는 것으로, 정신수양을 통해 온전한 마음을 지키는 공부를 하고, 사리 연구를 통해 일과 이치를 아는 공부를 하고 작업취사를 통해 몸과 마음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하자는 것입니다.

교도의 신앙생활

원불교의 수행

이와 같이 일원상의 수행은 삼학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삼학은 일원상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인 동시에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수행을 하는 공부길이 됩니다. 신앙을 잘하면 바른 수행이 되고, 그를 통하여 바른 신앙이 동시에 길러집니다. 그러므로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을 진리의 근원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일체를 이 일원에 통합하여 신앙과 수행에 직접 활용케 하였습니다.

수행길의 도우미와 방해자

삼학 공부를 해갈 때 추진력이 되는 것에는 믿음· 분발· 의문· 정성의 네 가지가 있습니다. 삼학이 참 마음을 회복하여 극락문을 들어가는 열쇠라면 그 열쇠는 신· 분· 의· 성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삼학 공부를 방해하는 것에는 불신· 탐욕· 게으름· 어리석음의 네 가지가 있는데, 삼학 공부를 돕는 네 가지와 방해하는 네 가지를 합하여 팔조라 부릅니다.

생활 속에서 선

원불교의 수행

우리가 좌선을 하고 염불을 하는 등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일심을 모으고 마음을 안정시켜 실생활에서 마음 공부한 실력을 잘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앉아서 좌선을 잘 한다 할지라도 실생활 속에서 욕심나는 대로 화나는 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공부한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마음공부를 하라고 하셨으며, 끊임없이 마음공부를 하여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참 자유를 얻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기르는 공부를 하고,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행하라.

<정전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법위등급

과거에는 순서 없는 공부로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하는 일이나 편벽된 수행법으로 병을 얻거나 생활의 터전을 등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종사는 이러한 여러 가지 폐단을 없애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올바른 수행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인격과 실천의 단계를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법위등급을 따라 공부하는 중에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법위등급이 다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거나 비교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며, 오직 자신의 수행을 대조하고 공부의 이정표로 삼아서 순서 있는 공부를 하는데 기준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위는 부처 되어가는 사다리 또는 층계라는 뜻에서 법계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법위등급을 법계로 말할 때, 보통급을 교도, 특신급을 교선(敎選), 법마상전급을 교정(敎正), 법강항마위를 정사(正師), 출가위를 원정사(圓正師), 대각여래위를 대원정사(大圓正師)라 부릅니다.

원불교의 수행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기르는 공부를 하고,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실행하라.

<정전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

보통급 법문에 들어옴

1. 보통급은 유무식·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처음으로 불문에 귀의하여 보통급 십계를 받은 사람의 급이요,

보통급은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할 공부임을 알리신 법문입니다. 의미를 좁히면 이 법 도량에 입문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불문에 귀의하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산종사는 이 보통급을 불지출발이라고 하셨습니다.

특신급 마음이란 그 어떤 감정도 다 그럴 수 있음을 알아지는 급

2. 특신급은 특신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 사람의 급입니다.

대산종사는 특신급을 큰집 발견이라고 하셨고 '뜻이 세워져서 마음이 딴 생각을 하지 않는 경지'라고 하셨습니다.

법마상전급 그러면 안된다는 마음과 싸우는 급

3. 법마상전급은 법마상전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 우리의 경전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으며, 천만 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으며, 법마상전의 뜻을 알아 법마상전을 하되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대기사(大忌事)는 아니하고,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의 승(勝)을 얻는 사람의 급입니다.

법마상전급에서는 공부 거리를 찾아내는 공부 단계입니다. 따라서 상전급 부터는 속깊은 마음공부가 시작됩니다.

대산종사는 상전급을 심리교전(心裏交戰)이라 하셨습니다.

교전이란 서로 엉켜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즉 교전은 나와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습(나) 즉 고정된 나와의 싸움이며, 공부를 해보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억센지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법강항마위 지금 있어진 나를 그대로 보는 급

4. 법강항마위는 육근을 응용하여 법마상전을 하되 법이 백전백승하며, 우리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의 위입니다.

법강항마위부터는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초성위(初聖位)여서 계문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정해서 실행하는 심계(心戒)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는 법마상전급까지는 급(級)이라 하시고 항마부터는 위(位)라고 하심은 무슨 이유일까요? 즉 급(級)은 내 자신이 공부하는 것으로 내 자신의 공부가 한 단계씩 올라감을 뜻하며, 위는 내 공부가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음을 말하며 동시에 남을 제도할 힘이 쌓여서 제 위치(자리, 능력)를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항마위부터는 초견성으로 첫 성위에 올라 남을 제도할 힘이 있다하여 법사라 하는 것입니다. 즉 법의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출가위 모든 마음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음을 찾아 증명하는 경지

6. 출가위는 대소 유무의 이치를 따라 인간의 시비 이해를 건설하며,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하며, 원근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하여 천신만고와 함지 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사람의 위입니다.

출가위가 되면

1) 가는 곳마다 동남풍을 불리게 됩니다.
2) 언제나 텅 빈 마음으로 삽니다.
3) 마음속에 아무런 사량계교나 분별 시비가 없습니다.
4) 우주 만물의 온갖 이치와 인생의 모든 일에 조금도 막히고 걸릴 것이 없습니다.
5) 심량광대, 원융무애, 호호탕탕하여 걸리고 막힐 것이 없습니다.
6) 차별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등에도 빠지지 않아서 평등과 차별을 자유자재로 운용합니다.
7) 겉으론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나,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다 바쳐버린 헌신 봉공의 생활을 하되 겉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고 다시는 중생세계로 퇴전하지 않습니다.
8) 모든 종교의 근본 정신에 정통하여 어느 한 종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9) 때로는 무언설법을 합니다. 말로 하지 않더라도 항상 진리를 설하는 것입니다.

대각여래위 천만방편을 터득하여 만능을 기르는 위

7. 대각여래위는 대자대비로 일체 생령을 제도하되 만능(萬能)이 겸비하며, 천만 방편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입니다.

대각(大覺)이란 '큰 깨달음'입니다. 여래(如來)란 말 그대로 '오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오는 듯하냐? 하면 경계가 오는 듯할 뿐 마음은 출렁이지 않음입니다. 위(位)란 말 그대로 '자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큰 깨달음을 얻는 경지를 말합니다.

여래위는 천만방편을 터득하여 만능을 기르는 위이며 그리하여 있어진 마음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위입니다.
대종사는 '자기가 나를 버리고는 갈지언정 내가 먼저 버리지는 아니한다.' 하신 말씀이 바로 '이용하는 법을 알면 천하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나니라'라는 뜻입니다. 사람따라 이용하는 법을 알면 내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원불교의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