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소개

경산 상사

재임기간 2006.11.05. ~ 2018.11.03.

경산 장응철 사진

경산 장응철 상사

경산 장응철 종사(1940)는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다수리에서 부친 장상봉과 모친 김출진옥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정치가가 되고자 했으나 이종형의 권유로 정산 송규 종사를 뵙고 원불교 입문과 동시에 출가하였습니다.
교법을 바탕으로 고경을 해석하는데 놀라운 식견을 지닌 그는 『생활 속의 금강경』, 『자유의 언덕』, 『수심결』, 『마음소 길들이기』, 『노자의 세계』, 『육조단경』 등을 해석하였습니다. 학교법인 영산학원 설립 인가와 영산원불교대학교 설립 인가를 통해 인재양성과 교육 발전에 심혈을 다하였으며, 교정원장 재임 시절 교정원 전산화와 영광 핵폐기장 설치를 막았습니다. 원불교 100년성업을 원만히 치러 국내외에 교단의 위상을 높였으며, 2018년(원기 103) 전산 김주원 종사에게 종법사직을 양위하고 상사로 추대되었습니다.

도미덕풍 법열로 5대경륜 실천(취임법문)

교화대불공, 교법인격화, 은혜확산, 준법운영, 결복백년대

100년성업 5대지표

교화대불공, 자신성업봉찬, 세계주세교단건설, 대자비교단, 보은대불사


경산 종법사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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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의 공부단계

심우의 공부단계 인간의 마음을 마음소(心牛)로 상징하여 수양 · 연구 · 취사 삼학을 관점으로 중생생활과 대도에 귀의하여 신행(信行), 수행(修行), 제행(濟行)의 생활을 노래한 말씀입니다. Ⅰ. 輪廻牛 (중생의 삶) 1. 汚染牛 (정신수양) 오색의 헛된 구름 천지에 가득하고 듬성듬성 사랑과 미움에 가슴 프다. 번뇌망상에 걱정 불안 쉴 날이 없어 어느 세월에 찌든 때를 지워 하늘을 볼거나. 2. 無明牛 (사리연구) 알지도 못하면서 이 생각 저 판단으로 옳다 그르다 소리치니 가상도 하구나 모르면서 모르는지도 모르는 철부지 인생 어느 세월에 마음 빛 찾아 님의 뜻을 알거나. 3. 罪惡牛 (작업취사) 몸과 입과 마음을 아무런 예산 없이 사용하여 남의 가슴에 상처요 세상 시끄럽게 하고 짓고 받는 불행에 세상 원망 태산이네 어느 세월에 악습 고쳐 복락을 닦으랴. Ⅱ. 信行牛 (신행인의 삶) 1. 洗慾牛 (정신수양) 불조의 원력으로 맑은 길 찾아 들어 경전 듣고 귀를 씻고 스승 만나 신심 내니 덮인 구름 걷어내고 묵은 때를 닦아 내네. 문득문득 청정한 맛 알 듯 말 듯 하여라. 2. 思索牛 (사리연구) 제불의 원력으로 밝은 길을 찾아들어 경전공부 하여가니 등불하나 뚜렷하다 묻고 배워 밝혀가니 재미 더욱 진진하네 알 듯 알듯한 마음이 잡힐듯 잡힐듯 하여라. 3. 善習牛 (작업취사) 불성의 법력으로 복락의 길 찾아들어 악업습관 탄식하며 선업습관 길들이니 인욕으로 무장하여 공익으로 정진한다 지고 이기고 반복하며 해 저무는 줄 몰라라. Ⅲ. 修行牛 (수행인의 삶)

2018.08.27

명심(明心) 개심(改心) 정심(靜心) 공부 - 약촌교당 교도 접견 법문 中

명심(明心) 개심(改心) 정심(靜心) 공부 현대사회의 위기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진 ․ 강급이 결정됩니다. 또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은생어해 해생어은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가 유심조’라 하셨고 대종사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마음 사용법을 훈련하라 ’하셨습니다. 마음을 잘 사용하면 언제나 극락인데 마음을 잘 못 사용하면 언제나 지옥입니다. 화탕지옥을 아십니까? 화가 나서 냉수를 찾을 때 그때가 바로 화탕지옥입니다. 결국은 내가 내 마음을 잘 못 사용한 결과입니다. 마음 사용할 때 제일 중요한 첫째는 명심(明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밖을 향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안으로 돌려 내가 내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현재 자기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봐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해내는 마음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텅 비어 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완전히 잘 아는 것을 ‘견성했다’ ‘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알아서 처방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울할 때, 건강이 여의치 않을 때, 스스로 처방해서 극복하고 처방해서 극복하기를 하고 또 하면 ‘마음을 알았다’ 할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깊어지면 좋은 마음 나쁜 마음이 나오기 이전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 성품! 그 성품을 아는 것을 ‘견성했다’고 합니다. 성품에는 나이도 남녀도 고금도 없습니다. 그런 참 묘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을 불종자라 합니다. 부처님이 왜 부처가 됐고 극락생활을 하느냐면 심지(心地)를 발견해서 사용할 줄 알았기에 부처가 되었습니다. 명심(明心)! 생각을 일으키는 분별심과 분별심 이전의 본심을 잘 밝혀나가야 합니다. 둘째는 개심(改心), 마음을 고쳐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마음을 고치느냐면 잘못된 마음을 고치면 됩니다. 화내는 마음 거만한 마음 스스로 못났다고 하는 마음 등 경계를 당하여 주로 나오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면 고쳐야 됩니다. 내가 내 성격을 고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그냥 죽을 폭 잡고 고쳐야 합니다. 매일 심고 올리고 기도하면서 유념하고 고쳐나가면 고쳐집니다. 이것이 공부의 요결이고 공부인의 참모습입니다. 마음의 원리를 알면 마음고치기가 훨씬 쉽습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똘감나무에 단감나무를 접붙이면 단감나무가 된다’하셨습니다. 화나는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심(靜心),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마음작용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쉴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해야 창의력이 생기고 평상심이 유지됩니다. 고요해야 바르게 보입니다. 아침에 좌선하고 저녁에 염불하고 시시로 기도하고 주문을 염송하는 것이 정심공부입니다. 그걸 잘해서 일심의 힘, 정심의 힘을 가져야 다음 생을 잘 갈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 明心 改心 靜心 훈련을 잘해서 모두모두 부처되시기 바랍니다. 약촌교당 교도님들 접견 법문中에서

2018.05.03

마음 사용을 거울처럼 - 故일타원 정일중 정사 열반법문 中

마음 사용을 거울처럼 日陀圓 정일중 정사는 명문가에 사시다가 그 당시 민심이 알아주지 않는 원불교에 출가하여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초창기 어려운 교단살림을 서원 일념으로 잘 넘기셨고 특히 초기에 원불교를 잘 모르는 경상도 지역에서 인고의 세월을 잘 극복해내셨습니다. 본래 타고난 천품이 순진하고 진실하셨습니다. 순수하고 진실함은 종교인의 보배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타원님은 참 훌륭한 생애를 사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최후 일념을 어떻게 해야 되오리까?’하는 질문에 ‘온전한 생각에 그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세생생을 거래할 때에 신심 서원이 보배이며 또 온전한 정신 그것 하나가 참으로 중요한 보배입니다. 그런데 갑자기죽을 때는 온전한 생각을 챙기기 쉽지 않습니다. 항상 남모르는 가운데 온전한 정신을 챙기고 일 끝나면 또 그곳에 머무르다가 다시 온전한 정신으로 일을 시작하고, 그래서 꿈에라도 그 온전한 정신을 챙겨서 최후일념이 온전하도록 하는 것이 생사거래의 가장 중요한 용심법이 될 것입니다. 하루는 조주스님에게 한 스님이 “가르침을 주십시오.” 여쭈니 조주스님 曰 “아침에 죽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죽 먹었으면 발우대를 잘 씻어라.” 하셨답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에 손님이 오면 깨끗이 씻은 찻잔에 차를 내고 손님이 가면 또 깨끗하게 씻어 놓곤 합니다. 마음도 손님 대접할 때 잘 사용하고 손님이 가고 나면 그릇 씻듯이 깨끗하게 씻어 놔야 됩니다. ‘씻는다’는 것은 사심 잡념이 없으면 그 자리입니다. 따로 찾으려고 하면 집착입니다. 마음을 사용한 후엔 온전한 정신으로 돌려서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을 오래오래 계속해서 훈련하는 것이 생사거래 하는데 참 중요한 일입니다. 장자를 보면 ‘至人의 用心은 若鏡이라’하였습니다. 거울은 경계를 가라 하지도 않고, 환영하지도 않고 항상 거울일 뿐입니다. 경계에 응해서 끝나면 그만이지 머물러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경계를 대하면 예쁜 사람 미운 사람 이런저런 분별을 해서 오래도록 기억을 해두고 다시 또 예뻐하고 생각하고 미워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거울은 경계에 응하고 난 다음에는 응이부장(應而不藏)합니다. 응해서 머물러두지 않습니다. 증애의 마음을 감춰두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경계를 당해 몸과 마음을 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과 至人들은 마음을 사용할 때에 항상 거울처럼 사용합니다. 거울은 사람이 보이면 보고, 가버리면 그만이고, 거울 그대로 일 뿐, 무엇을 따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만물을 대할 때 언제나 그 전의 일로 마음의 상처가 없이 만물을 잘 사용할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전무출신은 수도하고 마음 사용하는 것이 프로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공한 프로답게 죽을 때도 온전한 정신 하나를 잘 챙겨 반야용선 띄워서 가고, 평소에도 온전한 정신을 딱 챙겨서 응대하고 찻그릇 씻어버리듯 마음을 잘 씻어 내는 일을 오랫동안 단련하여 최후일념을 잘 보존해야겠습니다. 오늘 日陀圓께서는 꿈같은 한 생을 마쳤습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남모르는 적공을 하셨기에 잘 갔다가 잘 오실 것입니다. 이제 일타원께서는 대종사님 법문대로 최후일념을, 온전한 정신을 잘 챙겨서 거래하실 거라 믿고 다음 생에는 활연대오(豁然大悟)하는 큰 도인으로, 교화를 활달하게 하시는 그런 도인으로 오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故일타원 정일중 정사 열반법문(향적당)중에서

2018.05.03

낙원을 개척하자 - 신정절 법문 중

낙원을 개척하자 아침마다 일어나면서 ‘2세기 결복기 대운을 열어가는 주역이 되자. 우리 전 교도가 원불교 2세기를 맞이하여 결복의 대운을 활짝 열어가는 주역이 되자. 객으로서가 아닌 내가 주인이 되어서 대종사님의 심통 제자로 전 교도가 행복하고 전 인류가 다 일원의 품에 안기도록 하는 개척정신으로 살자’는 기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현 사회는 서구의 물질문명과 동양의 도덕문명이 마주하고 서로 닮아가고 싸우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대종사께서는 도학과 과학이 잘 조화된 새로운 참 문명세계를 열어가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일을 책임지고 해야 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우리 원불교 교도들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금년 한 해는 ‘일원세계를 개척하는 주역이 되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일원세계를 개척하는 주역이 되려면 맨 먼저 내가 나를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환경에 있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모든 일의 중심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복도 죄도 짓고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나에게 있습니다. ‘自勝自强’이라, 나를 이기고 극복하는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내가 있습니다. 즉 진리적 자아와 습관적 자아입니다. 진리와 함께하는 내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습관 들여온 나입니다. 진리적 자아가 습관적 자아를 잘 조절하고 잘 부려 써서 나와 주위를 변화시키는 일이 가장 큰 일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있는데 부처되고 함께 성인이 되자는 가치 외에 더 중요한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자가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을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우주적 자아 성자적 자아가 있어서 그것이 늘 나를 심판하고 그것이 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진리적 자아를 발견하여 습관적 자아를 이기고 조절하고 활용해서 명실상부한 부처가 되고 실다운 행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중생의 뱃속은 욕심쟁이로, 음식도 재산도 채워야 직성이 풀립니다. 가슴도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알아주지 않으면 기분 나빠합니다. 머리는 또 살짝 나를 속여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욕심쟁이로 명예에 끌리고 꾀돌이로 살아갑니다. 이제는 본래 가지고 있는 진리적 자아를 확충시키고 또 확충시켜서 요란하고 어리석고 그른 마음을 극복해서 성자의 모습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보은의 길로 가야 합니다. 지금의 나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라는 절대적 은혜 속에 존재합니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 만들어준 세상 만물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면 죄인이 되고 그걸 알면 명인이 되고 그걸 실천하면 언젠가는 달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건 하나가 나한테 오기까지는 천지 우주가 다 동원됩니다. 이 염주 하나도 그 과정을 보면 곳곳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물 하나하나가 다 우주가 동원되어서 만들어지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대종사께서는 ‘없어서는 살지 못할 은혜’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절대적인 은혜를 발견해서 늘 그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보은자이고 그 사람이 달도인 입니다. 개인 개인을 상대할 때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보은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대종사님의 심통 제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낙원세계를 개척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조각나 있습니다. 네 나라 내 나라가 있고, 네 이념 내 사상이 있고, 나라도 남과 북으로 동과 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어두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대종사님 교법을 통해서 밝은 세상으로 개척해가야 합니다. 또 이 세상은 차별 세상입니다. 이 차별 세상을 평등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조각난 세상 차별 세상은 전부 숙세에 지은 업장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병 없는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업장을 녹이는 법을 안내하는 일이 원불교인들의 일이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한 일이다. 현재 조각나 있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원불교인들의 책임이라는 걸 알고 낙원세계 즉 일원세계를 개척해 가는 주역이 되어야겠습니다. 옛 경전(황제음부경)에 ‘天人合發 萬變定基(하늘과 사람이 함께 발하여야 만 가지 변화의 기본이 정립된다-하늘의 이치(운행)에 맞게 인간도 같이 움직여야 일만 가지 변화의 기본이 정립될 수 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지자연이 봄이 되면 사람도 봄을 준비하고, 즉 천지의 운행에 맞게 인간도 같이 따라가면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은 봄이 되었는데 사람은 봄이 온 줄 모르고 늑장 부리면 자연과 사람이 어긋나서 큰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하면 자연은 봄이 되어 좋은 세상으로 가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조각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 조각난 마음, 어두운 마음, 업력에 시달리는 마음을 원불교인들이 합력하여 일원세계 낙원 세계로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신정절 법문 중에서

2018.05.03

신심, 공심, 공부심 그리고 교화 - 중앙교의회의원총회 설법 中

신심 공심 공부심 그리고 교화 돌아보면 재가출가가 합력하여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정성을 다하여 백주년 행사를 감격스럽게 잘 치러냈습니다.그동안 교단은 크게 발전을 거듭해서 사오백년 결복기를 맞이하는 첫 세기를 열어가고 있습니다.원기 108년은 3대 말입니다. 우리는 108년의 미래를 앞두고 교단의 결복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세계화할 것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논의해야겠습니다. 지금 물질문명이 급속히 발달하여 사람들이 정신없이 물질에 취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신 차리도록 해 줄 주인이 바로 우리 원불교 재가출가 교역자들입니다. 대종사님의 심통제자로 대종사님을 구아주 구세주로 모시고 대종사님 교법으로 내가 나를 구원하고 있는가, 원불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다음 생이 있는 줄을 알았을까, 내가 짓고 내가 받는 인과의 진리를 알았을까 그리고 마음 사용법을 익힐 수가 있었을까, 또한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교법으로 교단이 국가가 잘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얼마나 노력 하고 있는지, 또 세계를 구원하시려는 대종사님의 일대 경륜으로 세계를 향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결복기 대운을 열어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대종사님을 구세주로 구국주로 구가주로 구아주로 잘 모시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기초공사를 더욱 더 튼튼히 해야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신심 공심 공부심입니다. 교단 2세기를 시작하면서 신심 공심 공부심을 더욱 더 튼튼하게 다져서 그 반석 위에 교단을 세우고 그 반석 위에 세계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종사님 교법과 진리에 대한 신심이 얼마나 있는가, 진정으로 이 교법을 믿고 교법을 표준삼아 살고 있는가, 교법의 가치를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가를 늘 대조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동력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의 기초는 믿음에 있습니다. 만일 종교가 믿음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가 됩니다. 몇 천 년 몇 만 년을 이어갈 때에 교법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버린다고 하면 문제가 생기니 나의 신심은 어떤 신심인가 끊임없이 반조하여 대종사님의 교법에 대한 신성과 인과보응의 이치 법신불 사은의 존재에 대한 신심이 더욱 더 강해져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늘 공심을 강조하는데 세상의 존경받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공익정신이 있는 사람이고 공익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기 주변 자기기관 자기교당이나 자기 일에 대한 공심은 있겠으나 교단을 위한 공심 즉 교단의 큰 틀에서 생각하는 대공심이 있는지 대조해 볼 일입니다. 작은 공심이 전체공심을 저버릴 수 있다는 걱정을 꼭 해야 합니다. 출가위의 첫걸음은 나의 집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기 일 자기 지역을 넘어선 공심, 이것이 출가의 심법입니다. 출가라는 것은 작은 집을 벗어나서 큰 집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작은 공심, 부분공심은 충만할 것이고 우리가 항상 생각할 것은 교단의 대의에 합할 줄 아는 출가의 심법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더욱 더 교단의 대의에 철저히 합해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공부심입니다. 나는 내 입과 마음과 몸을 잘 관리하고 있는가? 입을 잘못 관리하면 늘 구설수에 오르고, 몸을 잘못 관리하면 예의가 없어지고, 마음관리를 잘못하면 결국에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오니 문제가 심각하게 됩니다. 속 깊은 마음공부를 해야 대종사님 교법에 의지해서 자기 구원이 됩니다. 그때 비로소 대종사께서 나의 구아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안으로 자기 마음을 살펴서 마음 조절하는 성찰(省察), 성심(省心)공부하는 도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재가·출가 모든 사람들이 교법을 표준으로 정기 상시를 통해서 자기훈련으로 원불교를 만나기 전의 나와 원불교를 만난 이후의 나가 확연히 달라져야 합니다. 신심 공심 공부심으로 기초공사를 단단히 하고 거기에 하나를 더하여 교화를 강조 합니다. 교화를 해야 합니다. 교화하려고 신심도 공심도 공부심도 냅니다. 이것을 대승행이라 합니다. 자기뿐 아니라 세상을 교화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더욱 더 큰 공부가 되고 사명감 있는 공부가 될 것 입니다. 그래서 사홍서원도 맨 앞이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중생제도부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뒤에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입니다. 그 순서를 보면 번뇌무진서원단을 하고 중생무변서원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중생제도의 서원을 먼저 세우라고 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생제도의 대 서원으로 공부를 해야 참 공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지금 교단 2세기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내 주변부터 이 법으로 거듭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지금부터는 거듭 ‘교화개척을 하자’는 것을 강조합니다. 대종사님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 무엇인가 하면 합력이고 융합이고 병행이고 병진입니다. 나와 우리가 조화된 어떠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종사님의 심법입니다. 과학문명만, 도학문명만 있어도 안 되고 이것을 결합해서 새로운 문명사회를 만들자 하는 것이 대종사님의 핵심사상입니다. 육신과 정신이 건강한 세상이 미래 세상의 비전이고 대종사님의 핵심정신입니다. 교단은 재가와 출가가 합심합력해서 대종사님 교법을 어떻게 잘 받들어나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교단을 성장시켜서 세계적인 교단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합력 융합 병진하여 교운을 크게 열어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원기102년 11월 4일 중앙교의회의원총회 설법 중에서

2018.05.03

청정일념으로 거래하소서! - 혜타원 오희원 원정사님 열반시 향적당 법문 中

청정일념으로 거래 하소서! 삼세를 거래하면서 중요한 것이 공덕과 인연 그리고 청정 일념을 잘 챙기는 것입니다. 혜타원 종사는 총부 공익부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화현장에서도 공덕을 지으셨고 인연으로는 사가 인연도 좋았고 공가에서는 위로 스승님들께 신성을 다 바치시고 좌우상하 인연을 알뜰히 챙기며 불연을 잘 맺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산훈련원 재직 당시 여래봉에서 얻은 감상을 글로 쓰신 것을 보면 한 깨달음을 얻으시고 일생을 청정일념 챙기는데 정성 다하시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청정일념을 알면서 기르는 것과 모르면서 그 자리를 챙기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십 생 정진을 해서 청정일념 길렀는데 왜 도를 못 깨달았을까?’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알고 그것에 합일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과는 결국 천양지판이 됩니다. 대산종사께서는 하루를 四時로 유무념 대조를 하셨습니다. ‘아침을 오전을 오후를 저녁을 도심으로 일관했나’ 살피셨답니다. 나는 학생 때 그 법문을 듣고 ‘도심이 무엇인가?’ 고민했었습니다. 도는 찾으려 애쓰면 멀어지고 내려놓으면 얻어지는 것이 한 마음차이입니다. 그 한마음 그것이 생사가 끊어진 자리이고 그것이 고락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우리가 출가하여 또 이 法門下에 들어와 그 한 마음을 알아서 그 한 마음을 잘 지키는 보림수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잘 모릅니다. 승찬대사의 신심명에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洞然明白)’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극한 도라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막힘없이 명백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도심인가 저것이 도심인가’ 자꾸 분별하고 간택하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고락과 욕심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통연 명백해집니다. 망념만 없으면 그 자리요 찾으면 찾을수록 멀어집니다. 수심결에서도 ‘다만 망념만 없다면 여여불(如如佛)이다.’ 하였고 일원상서원문에도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며 정산종사께서도 ‘본성반원 본탕평(自性返照 本蕩平)’이라 하여 자성을 관하면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망념과 욕심을 버린 텅 빈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취사하고 그 마음으로 거래하면 다음 생에서도 모든 수도인들의 모범이 될 것이며 그 마음이 우리들의 영원한 무량수입니다.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 한 마음을 알아서 그 마음을 잘 지키면 생사대사가 잘 해결 될 것입니다. 혜타원 오희원 원정사님 열반시 향적당법문 中에서

2018.05.03

생활 속에서 유무념 대조를 -만덕산 훈련팀 접견 시 법문 中

생활 속에서 유무념 대조를 처음에 수도문중에 입문하면 청법수도(聽法修道)를 하게 됩니다. 법문을 많이 새겨듣고 봉독하고 또 생각해보고 하는 과정을 청법수도라고 합니다. 동시에 실천해보려고 유무념 대조를 합니다. 유무념 대조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말조심하기, 신발 잘 벗기, 화장실 사용 후 소등하기 등 실천하기 쉬운 것부터 대조하면 재미가 붙어 공부에 취미가 생깁니다. 공부는 아주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키워나가야 합니다. 처음 유무념 대조를 할 때는 행동으로 하는 습관을 고치고, 다음에는 입으로 짓는 습관을, 그리고 이어서 마음으로 짓는 업을 고쳐 갑니다. 이런 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높여나가는 공부를 하는데 이것을 유념수도(有念修道)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욕을 먹고 무엇 때문에 일이 잘못 되는지 들여다보면 나의 단점이 보입니다. 나의 전생 습관 즉 습이 있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점점 고쳐나가야 합니다. 유무념 대조는 불법(佛法)으로 생활을 하고 생활에 불법(佛法)을 활용하는 좋은 공부입니다. 그 다음 공부가 순숙되면 성리를 단련하는 성리수도(性理修道)를 해야 합니다. 이야기를 무엇이 듣고 있습니까? 무엇이 들어서 말을 합니까? 모든 것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모양이 있나요? 그래서 선사는 ‘오직 모르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경계를 대하면 바로 분별을 합니다. 모양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성성하게 작용을 합니다. 성성하게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해서 ‘근본지’라 합니다. 마음에 잡념이 없을 때를 ‘적적하다 고요하다 텅 비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부르면 바로 알아차립니다. 지혜가 나옵니다. 그것이 성성한 상태입니다. ‘적적하다 고요하다’를 진공이라 하는데 진공은 필히 묘유 즉 지혜를 수반합니다. 반드시 한 몸 입니다. 이것을 성리라 합니다. 性은 마음이 나오는 곳 분별이 나오는 곳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가? 마음이 생기는 곳을 성이라 합니다.(性을 파자하면 마음심 자에 날생 자) 그것을 대종사께서는 ‘온전한 정신’이라 하셨고 ‘본심’이라고도 합니다. 본심 본래 있는 마음이 움직일 때 즉 분별을 낼 때는 꼭 이치 따라서 냅니다. 그 이치는 인과의 이치입니다. 청법수도를 하고 유념수도를 하고 성리수도를 한 다음에는 자비심(慈悲心)으로 사람을 상대해야 합니다. 성리공부를 제대로 하면 미운 사람도 특별히 예쁜 사람도 없고 담담하여 편안합니다. 그 때가 극락입니다. 자비심도 남을 용서하는 마음도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성리공부를 많이 하면 중생이 성자로 탈바꿈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가는 곳마다 덕화와 자비가 피어나고 은혜가 생깁니다. 만덕산에서 훈련으로 공부를 잘 했으면 유무념 대조를 잘 하여 여러분의 생활이 달라져야 합니다. 모두 다 내 탓이요 하면서 고치려들면 괴로워도 자기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성자는 ‘다 내 탓이요’ 하는 분입니다. 원기 102년 8월 10일 만덕산 훈련팀 접견 시 법문 중에서

2018.05.03

방심하지 말고 쉼 없이...-故보타원 김화경 정사 열반법문 中

방심하지 말고 쉼 없이... 교단은 드러나지 않은 도인들과 나서서 일을 해야 될 도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잘 어우러져서 조직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남이 알아줄 때는 알아주는 맛으로 이일 저일 하며 사는데, 남이 알아주나 몰라주나 무념도인으로 공익사업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없는 가운데 숨은 도인으로 교단 구석구석을 지켜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교단이 잘 운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렸을 때 ‘염불을 한번이라도 알뜰하게 하면 좁쌀만큼의 定力이 쌓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좁쌀만큼이라도 정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염불을 조금 하는 편이었습니다. 아마 보타원님도 염불과 기도 정성으로 생사에 대한 연마를 속 깊이 하셔서 수양력을 많이 쌓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업장을 수도를 하는 가운데 빨리 녹이고 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싹 벗어버리고 훌훌히 떠나실 것이라 믿습니다. ‘수도원은 문이 조용해야 한가해 진다’ 는 말이 있습니다. 방문을 너무 많이 드나들면 한가한 도인되기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마음출입이 잦으면 정력이 소모가 되어서 도의 함축이 어렵습니다. 너무 출입이 잦아 응대하려면 힘이 듭니다. 마음을 안 쓸 수가 없어 이말 저말 하고 나면 꼭 안 할 말이 나와 마음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들락날락 하는 마음을 조절하지 않으면 평생을 살아도 그냥 껍데기만 남습니다.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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