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소개

전산 종법사

재임기간 2018.11.03. ~

전산 김주원 사진

전산 김주원 종법사

전산 김주원 종법사는 1948년(원기 33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부친 김제암과 모친 민묘선행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동교당에서 입교하여 교전을 접하고 원불교에 입문하여 백옥무하(白玉無瑕)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당시 신도안에 주재하고 있던 대산 김대거 종사를 뵙고 출가를 발심하였습니다.
불퇴전의 서원과 신심으로 봉직하며 원불교 교도들의 법위등급에 따른 단계별 훈련의 체계를 정립하는데 이바지하였고, 법규 정비, 교헌 개정, 『대산종사법어』 편찬, 경인교구 교화후원재단 설립 등 업적을 남겼습니다. 영산선학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 2018년(원기 103년) 9월 18일 제234회 임시수위단회에서 종법사로 선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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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 종법사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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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개교절 법문] - 원기105년

대 각 개 교 절 경 축 사 원기 105년 대각개교절을 맞이하여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을 경축하고 원불교의 개교를 경축하고 재가·출가 전 교도의 공동생일을 경축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대종사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다시 되새기면서 대종사의 일대 경륜이 하루속히 실현되어 이 땅에 영과 육의 무지 질병 빈곤이 없는 낙원이 되기를 염원 드립니다. 오늘날 국가와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분이 생명을 잃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속히 진정되어 국가와 세계가 안정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드립니다. 대종사께서는 장차 상상하지 못할 이상세계가 도래한다고 희망을 주시면서 그 세상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마음의 병을 고치고 전 인류와 우주 만유가 하나임을 알고 상생으로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대종사의 구세제중의 거룩한 뜻을 마음에 새기고 열반을 앞두시고 유촉하신 최후 법문을 다시 받들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로이 다지고자 합니다. 대종사께서는 열반을 앞두시고 교단의 장래에 관계되는 다음의 열 가지 말씀을 자주 부촉하셨습니다. 1. 도가의 생명은 법의 혜명을 이어받아 전하는 일이니, 후세 영원토록 이 법의 맥박이 길이 쉬지 않게 모든 노력을 경주하라. 2. 법을 위하여서는 몸을 잊고, 공을 위하여서는 사를 놓는 대의의 기풍을 길이 진작하라. 3. 법은 일반 동지의 앞에 서서 세우고, 공은 일반 동지의 뒤에 서서 양보하는 알뜰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게 하라.

2020.04.01

[출가단보] 원기105년 4월 - 삼대불공법

삼대 불공법(三大佛供法) 대산종사님께서 전무출신의 도 12가지로써 전무출신의 정신을 잘 밝혀주셨습니다. 이 전무출신의 도를 몇 마디로 줄이면 삼대 불공법(三大佛供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석신명불공(不惜身命佛供), 금욕난행불공(禁慾難行佛供), 희사만행불공(喜捨萬行佛供)은 전무출신정신의 핵이며, 교단의 대의입니다. 첫째, 불석신명불공(不惜身命佛供)은 교단․진리․스승․법․회상을 위해, 공과 대를 위해 내 생명을 던진다는 정신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금욕난행불공(禁慾難行佛供)은 설사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며 딛고 일어서 이겨내며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희사만행불공(喜捨萬行佛供)은 모든 경계 속에서도 기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희사만행이 되어야 전무출신으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경계에 먼저 신信이 서면 경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신으로써 성리의 세계에 들어가야 희사만행이 될 수 있습니다. 금욕난행을 잘했다는 상, 못했다는 상이 찌꺼기로 남아있기 때문에 희사만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신성으로 성리의 세계에 들어가면 이 상들을 탁탁 털어내고 마음을 비워낼 수 있습니다. 그 비움을 실천하게 되면 그 속에서 기쁨, 법열이 솟아나게 됩니다. 억지로 웃는 웃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40대 중반쯤을 지나고 내 마음을 가만히 보면 어쩐지 마음에 항상 기쁨이 나오기에 생각해 보니, 이것이 법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 마음이 대개는 하루 안에 사라지고 오래 가야 일주일정도면 사라져서 항상 마음이 웃고 살게 되었습니다.

2020.04.01

[출가단보] 원기105년3월 - 법위사정Ⅱ

법 위 사 정 Ⅱ 교단 법위사정은 원기 61년에 처음 양성화하였습니다. 그때 항마를 하신 분이 상산 종사, 숭산 종사 같은 어른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숭산 종사님이 62세이고 대산 종법사님이 63세이셨는데 그분들은 출가위로 올려도 아무 이상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대중들은 ‘사람이 어떻게 항마를 하냐.’고 시끄러웠지만 대산 종법사님께서 천여래 만보살을 내는 것이 대종사님 경륜이므로 온갖 시비를 다 듣고 견뎌내신 것입니다. 그때는 6년 단위로 하면 시간이 길어서 3년으로 하여 빨리 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시대가 밝아지니까 법위 향상이 빨리 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대종사님 경륜을 받들기 위해서는 항마가 아닌 출가위를 목표로 내셔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대종사님 탄생 100주년 때는 여래위에 몇 분 승급시키려고 하셨다가 못 하셨습니다. 그렇게 법위를 올리시니 법위에 오른 어른들이 대산 종사님께 찾아와서 항마를 못 받겠다고 하시니까 대산 종사께서 혀를 차시면서 “자기들이 자기가 큰 줄 모르고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초창기 법위의 기준은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이면 정식 급이고 미만이면 예비 급이었습니다. 이후에 개정이 되어서 3조목을 정하고, 각 조목 당 40점씩 120점 만점에 75점 이상이면 정식 급이고 미만이면 예비 급으로 했습니다. 75점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62.5점입니다. 20% 정도 상향시킨 것인데 앞으로는 80점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앞으로 실력을 더 향상 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단의 실지 사정은 그렇게까지 미치질 못합니다. 백 주년까지는 교단 초창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 3대 말을 지나고 4대를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 다시 한번 점검이 필요합니다. 교단 적으로 방향이 결정되고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비사정 때 정항으로 된 분들은 훈련 과정을 거쳐서 ‘내 법위는 내가 올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바꿔 나가야 합니다

2020.03.13

[출가단보] 원기105년 2월 - 법위사정

법 위 사 정 법위사정에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정된 법위와 실력이 일치하는가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위사정의 목적은 법위를 향상시키자는 것인데 그 목적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법위와 실력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산종사께서 처음에는 100점 만점에 50점으로 하시고 조금 지나서 120점 만점에 75점, 100점으로 환산하면 62.5점 이상으로 하시다가 장차에는 80점까지 올리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항마 사정에 있어 실력을 상당히 상향시키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른들의 경륜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사정의 실제를 살펴보면 처음 50점보다 못 할 정도로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법위사정의 목적은 법위를 향상시키자는 데 있으므로 법위사정을 계기로 교도들을 훈련시켜서 많은 도인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법위사정을 통해서 훈련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못합니다. 대산종사께서 대종사님 경륜을 이어받아 법위를 양성화 시키시려고 하셨습니다. 100주년 까지는 조금 부족해도 초창기 공로를 인정해서 올리기도 했지만 교단 4대 시작 전에 법위사정의 의미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해 놓아야 합니다. 법위사정에 있어 철칙으로 간직하고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대산종사께서 대종사 사모님, 정산종사 사모님, 대산종사 사모님에 대한 출가위 사정을 하실 때 2대, 3대 종법사 사모님은 출가위로 사정하시고 정작 대종사 사모님은 사정하지 않으니 대중들의 시비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조실까지 찾아가서 어떻게 대사모님을 안올릴 수 있냐고 항의의 말을 하니 아무 말 없이 다 들으시고 그분들이 돌아가고 나서 하신 말씀이 “자기들은 대사모님인지 몰라도 나는 어머님으로 모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정으로 법위를 올릴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산업부장을 했던 달산 선진은 술중독이었습니다. 술을 많이 드셔서 항마가 안 되었다가 나중에 항마로 올리셨습니다. 그때 항마로 올리시면서 “달산이 그렇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일제치하 때 외교를 하기 위해 술을 먹다보니깐 알콜 중독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시니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것을 알게 되어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법위를 올리더라도 그에 맞는 명확한 명분이 있으면 괜찮습니다.

2020.03.13

[신정절] 신성으로 공부합시다 -원기 105년 신년 법문-

원기 105년 신년법문 신성으로 공부합시다 원기 105년 새해를 맞이하여 재가 출가 전 교도와 전 국민과 모든 인류의 앞날에 법신불 사은의 한량없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 시대의 구세성자로 오신 대종사께서는 복혜의 원천인 일원의 진리를 천명하시어 모든 인류가 다 같이 복과 혜가 구족한 광대 무량한 낙원에서 살 수 있도록 그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만 따라가면 한량없는 복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대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스승이 제자를 만나면 먼저 그의 신성을 본다. 왜냐하면 공부인이 독실한 신심이 있으면 그 법이 건네고 공을 이루는데 신심이 없으면 그 법이 건네지 못하고 공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심이 있어야 대종사님의 법을 받아 그 길을 따라서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신심은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므로 신이 없는 공부는 죽은 나무에 거름 하는 것 같아서 그 결과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독실한 신을 세워야 마침내 그 공부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이 신심일까요. 대종사 말씀하십니다. 신심은 무엇인가. 첫째, 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로 그 스승을 비방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혹 직접 보는 바에 무슨 의혹 되는 점이 있어도 거기에 사량심을 두지 않는 것이 신이요, 둘째, 스승의 모든 지도에 오직 순종하며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신이요, 셋째, 스승이 어떠한 방법으로 대하더라도 다 달게 받고 조금도 불평이 없는 것이 신이요, 넷째, 스승의 앞에서는 자기의 허물 등 모든 것을 조금도 속이지 아니하고 사실로 직고하는 것이 신이니

2019.12.05

[출가단보] 원기104년 12월 - 실력유삼단

우리가 출가하여 사는 까닭은 대종사님 경륜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 핵심은 실천입니다. 대종사님께서 변산에서 ‘실생활에 부합하는 산 종교의 교법을 제정’하신 것이나 ‘활불’을 강조하신 것은 실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전체에 흐르는 정신은 ‘실천’으로 봐야 합니다. 그중 마음에 두는 법문은 정산 종사의 실력 삼단 법문입니다. 명대실소 후무가관(名大實小 後無可觀). ‘이름이 크고 실이 작으면 뒤에 볼 것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밖에서는 원불교를 크게 보는데 안으로는 그러한 실력을 갖추었나 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최후승리 실력위상(最後勝利 實力爲上). ‘최후의 승리는 실력이 위다.’라는 말씀입니다. 원불교를 알리기 위해 선전을 많이 하는데 세상이 밝아져서 우리가 실제의 힘을 갖추면 자연히 알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실제의 힘을 3단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단이 없이 2단과 3단을 쌓을 수 없으므로 어떠한 일이 안 되면 먼저 1단을 챙겨야 합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생활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대산 종사의 ‘교단의 체제’ 법문입니다. 결국, 대종사님 경륜을 실현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은 회상을 통해 그 경륜을 실현하는 것이고, 대종사님 정신에 벗어나지 않고 그 일을 해낼 수 있게 밝혀 주신 법문이 교단의 체제 법문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정산 종사의 실력 삼단 법문과 대산 종사의 교단의 체제 법문은 같은 맥으로 통하고, 교단 만대에 교단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법문입니다. 교단의 체제 법문 중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는 말은 근본이 서야 도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사생하고 인류는 인류가 근본이고, 인류하고 사업은 사업이 근본이고, 사업하고 교화는 교화가 근본이고, 교화하고 공부는 공부가 근본이 됩니다. 따라서 본립의 순서가 공부, 교화, 사업, 인류, 사생의 순서로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화가 안 되면 교화 방법도 살펴봐야겠지만 근본은 나의 공부를 살펴봐서 적공, 정진,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사오십 년 결실, 사오백 년 결복’을 말씀하셨는데 이제 결실 성업은 마무리가 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이제는 결복을 향해서 우리 교단이 나가야 합니다. 결복 성업으로 나가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시켜서 교단은 공의를

2019.12.04

[출가단보] 원기104년 11월 - 결복성업의 터전

결복성업의 터전 원불교소태산기념관 개관식은 우리 교단으로는 대단히 의미 깊은 행사입니다. 이 장소는 교단 반백년에 마치 국가의 IMF처럼 전 교도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일대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교도의 혈성이 바쳐진 교단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교단 100주년을 넘어 이 거룩한 불사가 바로 이 장소에서 이루어진 것은 경산상사의 경륜과 결단, 재가출가의 합력, 담당자의 혈심, 건축추진위원들의 노고와 많은 이들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산상사께서는 "서울회관 건으로 남한강 사건이 터졌을 때 대산종사께서 두 번의 눈물을 흘리셨다"라고 하시며 "교단 100년이 지나면 어떻게든지 대산종사께 보은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씀을 받들고 소태산기념관 건립이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저는 소태산기념관 개관의 의의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국운에 대한 말씀입니다. 대종사께서 "이 나라가 장차 세계의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된다" 하셨으니 그 뜻을 받들기 위해 한국 사회에 더 많은 기여와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국운을 개척할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교정원의 총부기능과 중앙교의회의장이 소태산기념관이 있는 서울에 상주하면서 우리 사회의 활동력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교운에 대한 말씀입니다. 대종사께서 "사오십 년 결실이요, 사오백 년 결복이라" 하셨듯이 우리는 원기100년으로 결실성업을 마무리 짓고, 100년 이후 결복 성업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제 원불교는 세계교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금 원불교는 아이와 같습니다. 아직 성년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옷을 사줄 때는 큰 것을 사줍니다. 아이들은 계속 커나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

2019.10.29

[출가단보] 원기104년 9월 - 정신개벽(精神開闢)

정신개벽(精神開闢) 대종사님께서는 정신개벽을 하고자 회상을 여셨습니다. 그 방법을 교법에 밝히셨고, 훈련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정기훈련과 상시훈련 중에서도 상시훈련을 통해서 하고자 하셨습니다. 대산 종사께서는 “상시훈련 6조의 삶이 여래의 생활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대종사님도 그렇게 사셨고, 당신의 영생 삶의 표준도 이것이고, 다시 오셔도 그렇게 사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교법의 핵심을 교리도에 담으셨습니다. 신앙문과 수행문을 통해서 정신개벽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앙을 통해서는 일원의 위력을 얻고, 수행을 통해서는 일원의 체성에 합한 사람이 정신개벽이 된 사람입니다. 그걸 표준 잡아 준 것이 신앙문의 결론인 ‘처처불상 사사불공’이고, 수행문의 결론인 ‘무시선 무처선’입니다. 이 표준을 가지고 내가 얼마나 정신개벽이 되었는지 점수를 매겨봐야 합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을 볼 때 내 주위에 어느 정도가 부처로 보이며, 불공이 어느 정도나 되는가를 보면 나의 신앙 점수를 알 수 있고, ‘무시선 무처선’을 볼 때 견성·양성·솔성에 얼마나 토가 떨어졌는가를 보면 나의 수행 점수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정신개벽의 점수를 알 수 있는 표준이 되며, 신앙과 수행을 점검하는 길이 됩니다. 여래를 표준 해서 밝히신 법이기 때문에 과거의 법과는 다르며, 시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대로만 익혀 가면 됩니다. 결국 대종사님께서 밝혀 놓으신 훈련법대로 익혀가면서 반드시 일속에 공부가 들어 있어야 하고, 밖으로는 불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백 년 이후의 교단은 상시훈련법으로 교당, 가정, 사회마다 정착되어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서원을 세워서 정신개벽의 선도자가 되길 염원합니다.

2019.10.29

[출가단보] 원기104년 7월 - 무아봉공(無我奉公)

무아봉공(無我奉公) 대종사님께서는 이 회상을 펴실 때 마지막 결론을 ‘무아봉공’에 두셨습니다. ‘공부의 꽃은 교화’이고, ‘교화의 결실은 봉공’입니다. 공부해서 교화의 꽃을 피워야 하고, 교화를 통해 봉공으로 결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실천하신 분이 활불(活佛)입니다. 봉공하려면 무아가 되어야 하는데 성리를 알아야 무아가 됩니다. 성리에 대해 생활 속에서 쉽게 표준 잡아준 법문이 대산 종사님의 『교단 백주년 대적공실』 법문입니다. 그 중 정산 종사님의 법문을 생활 표준삼도록 대산 종사님이 소개하였습니다. ‘有爲爲無爲 無相相固全 忘我眞我現 爲公反自成’ (유위위무위 무상상고전 망아진아현 위공반자성) 우리가 하는 육근동작은 다 유위입니다. 중생과 불보살 모두 유위를 합니다. 그런데 무위가 되었다는 것은 ‘하고 난 뒤에 마음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하고 난 뒤에 상(相)이 남기 때문에 ‘유위위유위’가 되고, 불보살은 하고 난 뒤에 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유위위무위’가 되는 것입니다. 무위를 표준 잡는 것이 공부의 요령이고, 성리공부입니다. 그렇게 하면 ‘무상상고전’이 됩니다. 상 없는 것이 영원히 온전하다는 말입니다.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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