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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일대재 본문

의식
육일대재

욱일대재

원불교의 이재(二齎)중 하나로 소태산 대종사의 열반을 기념하는 날이며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하여 일체생령들을 추모하는 향례이다.

대재는 소태산 대종사 이하 원불교의 모든 조상 및 인류 역사상의 모든 성현과 일체 생령을 길이 추모하여 정례로 합동 향례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는 곧 추원 보본(追遠報本)의 예를 실행하는 바로 서 해마다 두 번 행례하되, 6월 1일(육일대재)과 12월 1일(명절대재)에 대종사를 위시한 역대 선령 열위를 영모전에 공동 향례하여 모든 교도로 하여금 마음을 이에 합하며, 정성을 이에 바치며, 위의를 이에 갖추어서 법계향화(法系香火)가 한 없는 세월에 길이 유전하게 하자 는 것입니다.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원기 28년 6월 1일 열반하셨습니다.

원불교 전 교도는 소태산 대종사 열반일을 기념하여 육일대재를 봉행합니다. 육일대재에는 정중한 복장과 추모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육일대재식 후에는 대종사 추모법회를 개최하여 추원 보본의 의의를 더욱 드러냅니다.

합동 향례의 공덕

원불교의 전 교도가 함께하는 교단적인 합동향례는 대중의 공동 추모와 선지식의 합동 축원을 받게 되므로 그만큼 큰 공덕이 있습니다.

공동위패의 봉안

육일대재의 추모 선령 열위는 영모전에 공동위패로 모십니다.

이는 과거의 번잡한 폐단을 없이하고 한 묘우(廟宇) 안에 많은 수(數)의 입묘를 쉽게 하여, 한없는 세월에 모든 선령을 공동 추모하자 는 뜻이 있습니다.

석존성탄절

기념식순

소태산 대종사 성령과 역대 선진 성령을 추모하며 각 교당 및 기관에서 6월 1일 진행한다.

1.개식   2.입정   3.교가   4.심고   5.묘위보고
6.대종사 봉청 및 고축 찬송   7.열위 봉청 및 고축 찬송   8.일동 헌배
9.독경   10.내빈분향   11.폐식   

고축찬송이란?

고축이란 육일대재나 명절대재 때 소태산 대종사와 역대 선령전에 그 업적을 추모하고, 그 위업을 이어받아 교단의 발전에 혈심 봉공하기로 맹세를 올리는 것이며, 찬송이란 그분들의 업적을 찬송하기 위하여 성가를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봉청 및 고축 찬송

① 대종사 봉청
② 대종사전 고축문 찬송(성가 6장)
③ 열위봉청
④ 종사위 전 고축문 찬송(성가 7장)
⑤ 대봉도 대호법 전 고축문 찬송(성가 8장)
⑥ 전무출신 전 고축문 찬송(성가 9장)
⑦ 거진출진 전 고축문 찬송(성가 10장)
⑧ 보통출가 재가교도 전 위령문(성가 18장)
⑨ 희사위 전 고축문 찬송(성가 11장)
⑩ 일반부모선조 전 고축문 찬송(성가 47장)
⑪ 선성위와 생령위 전 분향재배(성가 75장)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 비명병서

“대범 천지에는 사시가 순환하고 일월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生成)의 도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佛佛)이 계세(繼世)하고 성성(聖聖)이 상전(相傳)하므로 중생이 그 제도의 은(恩)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 자연의 정칙이다. 옛날 영산회상(靈山會上)이 열린 후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을 지내고 계법(季法)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며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生靈)의 고해(苦海)가 날로 증심(增深)했나니 이것이 곧 구주(救主)이신 대종사(大宗師)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機緣)이다.

대종사의 성은 박(朴)씨요 휘는 중빈(重彬)이요 소태산(少太山)은 그 호이시니 석존기원(釋尊紀元) 2918년 신묘 3월 27일에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탄생하시었다. 부는 박회경(朴晦傾) 모는 유정천(劉定天)이시요 신라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이시다. 대종사 유시로부터 기상이 늠름하시고 도량이 웅대하시며 모든 사물에 매양 사색의 정신이 많으시고 한번 하기로 한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용단력이 있으시었다.

9세시에 우주의 자연 현상을 보시고 큰 의심이 발하시었으나 그 의두(疑頭)를 풀기로 한즉 생각이 막연하여 도저히 구경처(究竟處)를 해득하기가 어려우매 대종사의 우울하신 심경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시사 처음에는 산신에게 다음에는 도사에게 의뢰를 구하여 보시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필경은 주소일념(晝宵一念)이 오직 한 의심뿐으로 점점 계교돈망(計較頓忘)하는 삼매의 경계에 드시시었으니 이 사이에 생활의 곤란과 심신의 피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으시었다. 26세되시던 병진 3월 26일 이른 아침에 동천의 서광을 보시고 정신이 문득 상쾌해지시며 적세에 맺혔던 의두가 풀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시었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전성(前聖)의 증오처(證悟處)를 참고하기 위하사 제가(諸家)의 경전을 열람하시다가 금강경(金剛經)을 보시고 가라사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은 진실로 성중성(聖中聖)이라 하시고 이에 부처님에게 연원(淵源)을 정하시고 다시 현 시국을 관찰하시매 세도(世道)가 이미 위기에 당하여 그 구제사업이 시급함을 생각하시고 처음 구인제자를 얻으사 최초법어(最初法語)를 설하신 후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기초를 닦기 위해 먼저 저축조합을 설치하사 길룡리 해면의 간석지를

개척하시고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세우기 위해 기도서원(祈禱誓願)을 명하시었던 바 9인이 한가지 혈인(血印)의 신성을 바치었다. 기미 8월에 2, 3제자를 데리시고 석장(錫杖)을 부안 봉래산에 옮기시어 5년간 주재하시며 교리제도(敎理制度)의 초안을 대략 마치신 후 갑자 4월에 하산하시어 총부(總部)를 차(此) 신룡리에 건설하시고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공개하사 제자 수 10인으로 더불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간고한 생활을 하여가며 교리훈련을 시작하시었나니 교리의 대강은 일원(一圓)을 최고종지(最高宗旨)로 하여 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는 동시에 천만사리(千萬事理)를 다 이에 통일케 하시고 사은사요(四恩四要)를 윤리로 하여 종전에 미달한 모든 윤리를 다 통하게 하시고 삼학팔조(三學八條)를 수행으로 하여 종전에 편벽된 일체 수행을 병진하게 하시며 다시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行)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등 대체를 밝히사 사통오달의 원융한 도로써 모든 법을 간이능행(簡易能行)케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교리 훈련을 실시하시는 일방 다시 생활제도의 개선에 착수하사 허례산삭(虛禮刪削)과 미신타파(迷信打破)며 자작자급(自作自給)과 수지대조(收支對照) 등 방법으로써 새로운 사업기초를 쌓으사 춘풍추우(春風秋雨) 20여년에 숙야근간(夙夜勤懇)하시와 일정(日政)의 압제와 싸워가며 모든 난관을 극복하시어 교단 건설에 오로지 심혈을 다하시더니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하여 계미 5월 16일에 대중을 모으시고 생사진리(生死眞理)의 대법문(大法門)을 최후로 설하신 후 6월 1일에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니 세수는 53이요 개법(開法)이 28년이었다.

때에 도중(度衆)들은 반호벽용(攀號繞踊)하여 그칠 줄을 몰랐고 일반 사회의 차탄(嗟嘆)하는 소리 연하여 마지아니했으며 허공법계(虛空法界)와 삼라만상이 다 같이 오열(嗚咽)하는 기상을 보이었다. 그 후 교단은 한결같이 선사(先師)의 유업을 이어 시국의 만난(萬難)을 겪으며 대중이 일심동진(一心同進)하던 중 을유 8월에 민족이 해방이 되자 신생국운의 발전과 아울러 교세가 점차 확장되매 병술 4월에 교명을 원불교(圓佛敎)라 정하고 이를 천하에 공시했다.

오호라, 대종사는 일찍이 광겁종성(曠劫種聖)으로 궁촌변지(窮村邊地)에 생장하시어 학문의 수습이 없었으나 문리를 스스로 알으시고, 사장(師長)의 지도가 없었으나 대도를 자각하시었으며 판탕(板蕩)한 시국을 당했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이 구비하시었으며, 기상은 태산교악(泰山喬嶽)같으시나 춘풍화기(春風和氣)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世世曲節)의 진정을 통해주시며,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에 시용(施用)하시나 본체는 항상 여여히 드러내사, 안으로는 무상묘의(無上妙義)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지류(支流)까지 통하시어 일원대도(一圓大道)의 바른 법을 시방삼세에 한없이

열으시었으니, 이른바 백억화신(百億化身)의 여래(如來)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이시라, 영천영지 천만겁(永天永地 千萬劫)에 무량한 그 공덕을 만일(萬一)이라도 표기(標記)하기 위해 이 돌을 세우고 이 명(銘)을 지어 가로대,

월약종사 광겁종성(粵若宗師 曠劫種聖)
응화기연 구세도중(應化機緣 救世度衆)
자수자각 경로간난(自修自覺 經路艱難)
건교사업 평지조산(建敎事業 平地造山)
일원대도 만법지모(一圓大道 萬法之母)
교문통달 중성공회(敎門通達 衆聖共會)
이팔년간 숙야근간(二八年間 夙夜勤懇)
천만방편 무량법문(千萬方便 無量法門)
법륜부전 불일중휘(法輪復轉 佛日重輝)
인천함대 육중동귀(人天咸戴 六衆同歸)
수긍삼제 횡편시방(竪亘三際 橫遍十方)
우로지택 일월지명(雨露之澤 日月之明)
무변공덕 표이사석(無邊功德 標以斯石)
영천영지 모앙무극(永天永地 慕仰無極)

원기38년 4월 26일 입(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