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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 재임 원기 1년~28년 5월)는 1891년 양력 5월 5일 전라남도 영광에서 부친 박성삼, 모친 유정천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7세부터 자연현상과 인생에 대하여 특별한 의심을 품고, 스스로 도(道)에 발심하여 20여 년 간 구도고행을 계속하사 마침내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주창하고, 먼저 미신타파, 문맹퇴치, 저축조합운동을 통해 혼란한 시국 속에서도 희미해져 가는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륜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새회상 창립의 경제적 기초를 세운 2만 6천여 평의 정관평 방언공사, 인류구원을 위한 혈성의 기도로 법계의 인증을 받은 법인성사, 법신불 일원상을 최고의 종지로 삼아 교리와 제도를 제정한 봉래제법, 교화, 교육, 자선의 중심지 익산 총부 건설 등 소태산 대종사의 제세경륜은 인류의 빛이요, 거룩한 주세 성자의 생애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일대기는 대종사 십상으로 정리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원불교 창립의 큰 물줄기며 초기교단사 이기도 합니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

대종사 십상(일대기)

① 관천기의상
7세경부터 우주 만유의 온갖 이치와 인간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큰 의심을 일으키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됩니다.

② 삼령기원상
11세 되던 해 문중의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신통 불가사의한 힘을 가졌다는 산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산신을 직접 만나서 모든 의심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삼밭재 마당바위를 오르 내리면서 기도를 5년 간이나 지성으로 계속합니다.

③ 구사고행상
16세 되던 해 봄에 고대소설 〈조웅전〉 읽는 소리를 듣는 중에 주인공이 도사를 만나 신통 묘술을 배워 크게 성공하고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산신 만나기를 단념하고 보통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가졌다는 도사를 만나 모든 의심을 해결해 보리라는 결심으로 스승을 찾아 온갖 고행을 거듭합니다.

④ 강변입정상
20세가 넘자 산신과 도사는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가공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내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하는 큰 걱정만 날로 쌓이게 되어, 우연히 오르는 주송을 외우기도 하고 때로는 등상처럼 우두커니 한곳에 서서 깊은 명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24·5세 경을 전후해서는 일체의 사량분별을 잊어버리고 큰 정(大定)에 들게 되었고, 이 무렵 어느 여름날 선진포 나룻터에서 반일 동안이나 입정상태에서 그대로 서 있기도 하였습니다.

⑤ 장항대각상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 이른 새벽, 동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이 밝아지고 모든 의심이 일시에 다 풀리고 마침내 일원의 진리를 크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⑥ 영산방언상
깨달음을 얻으신 후 최초로 구인제자를 얻어 저축조합을 설치하고 미신타파·허례폐지·근검저축·절약절식·공동출역 등으로 새 생활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18년(원기 3) 4월부터는 1년간 구인제자들과 함께 영산 앞의 갯벌을 막아서 간석지 개간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⑦ 혈인법인상
방언공사가 끝나자 이어서 구인제자로 하여금 마음을 통일시키고 공도정신을 살리기 위해 진리 앞에 사무여한의 기도서원을 올리게 하여, 1919년(원기 4) 8월 21일에 마침내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나 새 회상창립의 법계 인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⑧ 봉래제법상
혈인기도를 끝낸 다음, 그 해 10월 경에 전북 부안 봉래정사로 들어가 몇 몇 제자들과 함께 수양과 보림에 주력하신 한 편으로는 창립 인연들을 만나고 일원상·사은 사요·삼학 팔조를 중심으로한 교리의 강령을 제정하고, <조선불교 혁신론>, <수양연구요론> 등의 초기교서를 초안하였으며, 총부 건설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⑨ 신룡전법상
마침내 기회가 무르익자 1924년(원기 9) 6월 1일에 익산시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교문(敎門)을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현재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기지를 정하고 12월 경에 1차 건설을 끝내고 이로부터 제생의세의 교화사업을 펴기 시작합니다.

⑩ 계미열반상
일제의 압정 속에서 교단을 창립 발전시켜 오다가 1943년(원기 28) 계미년 6월 1일 53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