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소개

법인절

원불교의 4대 경절의 하나로 8월21일 구인제자가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로써 법계의 인증을 얻은 것을 경축하는 경절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영욕고락에 진퇴를 같이 하기로 거듭거듭 서원합니다.


법인절 의미

원기 4년 3월 방언공사를 끝낸 구인제자는 대종사님의 명에 따라 특별기도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만생령을 구제하기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쳐도 조금도 아까움이 없겠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지극한 정성 으로 100일간 기도를 계속하여 마침내 8월 21일에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흰 종이에 맨 손가락으로 찍은 것이 핏빛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백지혈인 또는 혈인성사라고 합니다. 백지혈인의 이적은 원불교가 진리계의 인증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9인 제자들의 지극한 기도 정성으로 백지혈인의 이적이 나타남을 보시고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이미 감응하였고 음부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

이제 그대들의 몸은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만고(千辛萬苦)와 함지사지(陷地死地)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또는 가정 애착과 오욕의 경계를 당할 때에도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한다면 거기에 끌리지 아니할 것인 즉 그 끌림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하셨습니다.

또 법호(法號)와 법명(法名)을 주시며 "그대들의 전날 이름은 세속 이름이요, 개인의 사사 이름이었던 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세계 공명(公名)인 새 이름을 주어 다시 살리는 바이니 삼가 받들어 가져서 많은 창생을 제도하라." 하셨습니다.

<대종경 서품 14장>


법인절 기념식

매년 8월 21일 법인절은 구인인제자가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로써 원불교 창립정신의 표준을 보여주고 법계의 인증을 얻은 것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경절입니다.
  • · 일시 : 매년 8월 21일(각 교당, 기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 · 장소 : 원불교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각 교당 기관에서 진행)
  • * 중앙총부 기념식은 생방송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제가


세상을 위한 법인기도

대종사께서는 원기 4년(1919년)에 9인 단원과 함께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들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종사와 9인 단원이 사심(私心) 없이 올린 사무여한(死無餘恨) 기도는 천지 신명의 감응으로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을 나투었습니다. 이에 대종사께서는 “음부공사(陰府公事)가 이제 판결이 났으니, 우리의 성공은 이로부터 비롯하였도다.” 하시고,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 세계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에 비록 천신 만고와 함지 사지를 당할지라도 오직 오늘의 이 마음을 변하지 말고, 가정 애착과 오욕(五慾)의 경계에 끌림 없는 순일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법인기도(法認祈禱)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적 기초를 확립하고, 신성·단결·공심을 더욱 굳게 한 새 회상 건설의 일대 정신 작업이었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는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고,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대종사가 되고 9인 선진이 되어,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대종사님의 법음이 온 세상에 퍼져서 물질문명과 도덕문명이 조화롭게 발달 되기를 기원하고, 평화와 은혜가 가득한 낙원세계가 되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며, 우리들 스스로도 선진님들께서 보여주신 대신성 · 대단결 · 대봉공의 법인정신을 체받아 결복대운을 열어가는 주역으로 거듭나고자 법인기도를 근원 성지 영산(靈山)에서 올리고자 합니다.
  • ·결제식 : 원기 103(2018)년 4월 7일(토) ~ 104(2019)년 8월 17일(토)
  • ·법인성사 100주년 법인기도 해제식 :
       원기 104(2019)년 8월 17일(토), 법회(8월 18일(일), 영산성지 법인광장, 구인 기도봉
  • ·설법 : 전산 종법사
  • ·주최 및 문의 : 원불교 교정원 교화훈련부
  • ·주관 : 4개 단체(청운회, 봉공회, 여성회, 청년회), 영산성지 공동체

  • 대종경 서품 6장

    대종사 앞으로 시방 세계(十方世界) 모든 사람을 두루 교화할 십인 일단(十人一團)의 단 조직 방법을 제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오직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루 훈련할 빠른 방법이니, 몇 억만의 많은 수라도 가히 지도할 수 있으나 그 공력은 항상 아홉 사람에게만 드리면 되는 간이한 조직이니라.」 하시고, 앞서 고르신 구인 제자로 이 회상 최초의 단을 조직하신 후 「이 단은 곧 시방 세계를 응하여 조직된 것이니 단장은 하늘을 응하고 중앙(中央)은 땅을 응하였으며 팔인 단원은 팔방을 응한 것이라, 펴서 말하면 이 단이 곧 시방을 대표하고 거두어 말하면 시방을 곧 한 몸에 합한 이치니라.」 하시니, 단장에 대종사, 중앙에 송 규(宋奎), 단원에 이 재철(李載喆) 이 순순(李旬旬) 김 기천(金幾千) 오 창건(吳昌建) 박 세철(朴世喆) 박 동국(朴東局) 유 건(劉巾) 김 광선(金光旋)이러라.

    대종경 서품 13장

    대종사 구인 단원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물질 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로서 어찌 이를 범연히 생각하고 있으리요. 옛 성현들도 창생을 위하여 지성으로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天意)를 감동시킨 일이 없지 않나니, 그대들도 이때를 당하여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천지에 기도하여 천의에 감동이 있게 하여 볼지어다. 그대들의 마음은 곧 하늘의 마음이라 마음이 한 번 전일하여 조금도 사가 없게 되면 곧 천지로 더불어 그 덕을 합하여 모든 일이 다 그 마음을 따라 성공이 될 것이니, 그대들은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 하시고, 일자와 방위를 지정 하시어 일제히 기도를 계속하게 하시니라.

    정산종사법어 기연편 3장

    원기 4년 7월 26일, 최후의 법인 기도 때에 대종사께서 구인에게 마지막 남길 말을 물으시니, 정산 종사 사뢰기를 「저희들은 이대로 기쁘게 가오나 남으신 대종사께서 혹 저희들의 이 일로하여 추호라도 괴로우실 일이 없으시기를 비나이다」 하시니라.

    대종경선외록 초도이적장 3절

    대종사 처음 단(團)을 조직하실 때에 오모(吳某)라는 사람이 예선(豫選)에 참여하였었다. 그런데, 그가 그 후 변심하여 주색에 방탕하고 정당치 못한 사람들과 상종하면서 대종사와 일반 동지를 심히 비방까지 하였다. 김성구(金聖久)가 이를 보고 내심에 생각하기를 "전날에 오모가 그와 같이 중한 맹세를 하고, 지금 저와 같이 변심 행위를 감행하니 만일 그때의 서약이 영험이 있다면 그 신변에 어찌 죄해가 없겠는가" 하고 어느 날 대종사께 그 뜻으로 여쭈었다.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내가 오늘 그 사람의 전도를 미리 판단은 아니하나 그 사람이 그 맹세를 보통 농담으로 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하였었다면 그 한 말이 극히 중하고 어려운 바가 있는 것이다. 어찌 무단한 헛말로만 생각하리요." 그 후 얼마 아니하여 그 사람이 술에 대취하여 급병으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일로 인하여 김성구와 일반 동지가 법계의 영험에 두려움을 느끼고 처음 신근들이 더욱 굳어졌다.

    한울안 제1편 법문과 일화 심은대로거둠 55절

    "세상에 천심(天心) 천진(天眞)이란 말이 있는데 사람과 하늘이 무슨 관계가 있어서 하늘 천(天)자를 붙였겠는가? 천이란 허공 법계로서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본래 나와 둘이 아닌 하나로 거기에 묘한 기운이 있어서 정성이 지극할 때에는 감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왕이 은나라를 쳐서 주나라 천하를 만든지 2년 뒤에 무왕이 병으로 생명이 위태로왔다. 이에, 무왕의 아우인 주공이 스스로 왕을 대신하여 생명을 바치려 결심하고 하늘에 기도한 바 무왕이 건강을 회복하여 정사를 잘 하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 무왕이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이 즉위 하였으나 나이가 어리므로 주공이 섭정으로 이를 보좌하였다. 주공은 왕의 숙부이고 특히 덕이 높고 정치가로서의 수완도 훌륭하였으므로 천하 인민이 모두 그를 사모하고 따라서 주공의 위세는 예사가 아니었다. 이것을 질투한 그의 아우들이 '주공이 왕의 지위를 빼앗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결국 성왕까지도 주공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공은 '세상 사람들의 의심이 풀릴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는 수 밖에 없다.' 하고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그로부터 2년이 경과한 해의 가을,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라고 모두 기뻐하고 있을 때 별안간 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어 벼가 쓰러지고 큰 나무까지도 넘어지므로 사람들은 두려워 하며, 이는 세상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하늘이 노여워 경계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성왕은 대부들과 상의하여 주공이 연전에 선조 제사 때의 기록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는 금등(金?)의 상자를 열어 보았다. 이 상자는 금으로 자물쇠가 되어 있고 특별한 때가 아니면 아무도 열어 볼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무왕이 병들었을 때 주공이 스스로 생명을 대신하고자 기도를 드린 기록이 보존되어 있었다. 성왕은 이것을 보고 주공이 자기의 숙부이며 큰 은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심하였음을 크게 후회하고, 또 모든 사람들도 주공의 성심을 비로소 알게 되어 다시 주공을 지지하여 옛 지위에 복귀시키고 주공의 말이라면 순종하기로 서약하니, 번개가 그치고 바람이 전과 정 반대쪽에서 불어와 넘어졌던 벼와 나무가 모두 일어서서 아무 피해가 없게 되었다 한다. 이와 같이, 사심 없는 마음으로 정성이 지극하면 반드시 하늘도 감응하는 것이며, 또한 허공 법계는 무심하지 아니하여 호리도 틀림없이 죄복을 보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아니할 것이요, 공부인으로서 이 지경에 이르면 탄탄한 대로가 열렸다 할 것이다."

  • 법인성사

    [백지혈인(白指血印)]의 법인성사(法認聖事) 있은 후 올 7월로 마흔 두 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날을 명절로 챙기기 시작한 것은 이번으로 일곱 번 밖에 안된다. 원기 40년 8월에 [원광]11호 사설로 제언되고 그해 음력 당일에 총부에서만 첫 행사를 보게 된 이 기념일은 이듬해 2월의 [교무 연합회]에서 우리 교의 요일로 결정되었고 종법사님에 의하여 [법인기념일(法認紀念日)]로 명명되는 동시에 매년 양력 7·26일로 이 날을 기념하게 되어 그 후부터 각 교당 일제히 행사를 가져오는 터이다. 이제 늦게나마 [법인기념가(法認紀念歌)]가 제정되었으니 관련 있는 교사(敎史)의 부분들을 될수록 충실히 인거하여 노래의 뜻을 풀이도 하고 미치지 못한 대목을 보완(補完)도 하고자 한다. 원기 4년 기미 3월 방언(防堰)공사가 끝나고 대종사님께서 아홉 분 단원에게 명하시어 [특별기도(特別祈禱)]를 하게 하시니 곧 [모든 사람의 정신이 물욕에 끌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 를 기도]하며 위로 대종사님의 성의(聖意)를 받들고 아래로 일반 동지의 단결을 굳게 하여 [시대에 적합 한 정법을 이 세상에 건설한 후 나날이 쇠퇴해 가는 세도 인심을 바로 잡기를 성심 발원]하게 하심이었다.

    이에 3월 2일로 시작하여 10일동안 재계로서 매월 삼육일에 기도식을 거행하되 기도는 [밤 10시로부터 12시 정각까지]로 하며 각각 시계를 가져서 [기도의 시작과 그침에 서로 분(分)이 틀리지 않게 하고 장소는 각단원의 분위(分位)를 따라 정하되 중앙봉 으로 비롯하여 팔방의 봉우리를 지정하고 단기(團旗)(팔괘기(八卦旗))를 기도 장소에 세우게하며 식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향촉과 청수를 진설하고 헌배와 심고를 올리며 그 다음에 축문을 외우도록]하시었다.

    와 같이 10일에 한번씩의 정례산상 기도를 시행하기 열 두 번째인 7월 16일 대종사님께서 다시 단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지금까지 기도해온 정성은 퍽 장한 바 있으나 나의 증험하는 바로는 아직도 천의(天意)를 움직이는 데는 그 거리가 머니 이는 그래도 그대들 마음 가운데 어떠한 사사 생각이 남아 있는 연고라 그대들이 사실로 인류 세계를 위할진대 그대들의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 정법(正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蒼生)이 도덕의 구원만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없이 그 일을 실행하겠는가]하시니 단원들이 일제히 [그리 하겠습니다]하는지라 대종사님께서 한층 더 엄숙한 어조로 [옛말에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도 있고 또는 그를 실행하여 이적(異蹟)을 나툰 사람도 있었으니 그대들이 만일 그와 같이 남음 없는 마음으로 대중을 위한다면 천지신명이 어찌 그 정성에 감동하지 아니하며 또는 그 소원에 어찌 성공이 없으리오. 멀지 않은 장래에 도덕의 정법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고 혼란한 인심이 점점 정돈되어 창생의 행복이 장차 한이 없을것이라. 그리 된다면 그대들은 곧 세상을 구원한 구주(救主)요 그 음덕은 또한 만세를 통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생사는 인간 대사라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그대들 중에 만일 조금이라도 못 잊을 생각이 있어서 생명 희생에 남는 한이 있다면 또한 숨기지 말고 곧 말하라.
  • 구인선진

    박동국(朴東局)·유건(劉巾)·김광선(金光旋) 등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들 구인제자 들과 더불어 저축조합·방언공사·혈인기도 등 교단 창립의 중요 터전을 다져갔다. 또한 구인제자들로 첫 교화단을 조직했고, 이들에게 처음으로 법명과 법호를 내렸으며, 첫 수위단을 조직했다.

    구인제자들이 교단을 창립하면서 직접 체현(體現)한 정신, 곧 이소성대·일심합력·무아봉공·근검저축 의 정신은 원불교 창립정신으으로 승화되어 후진들에게 계속 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

    구인제자는 서가모니불의 십대 제자, 공자의 공문 십철, 예수 그리스도의 십이 사도와 같이 교단창립의 주축이 되었으며 후세에 존숭받고 있다.

    • 일산 이재철

    • 이산 이순순

    • 삼산 김기천

    • 사산 오창건

    • 오산 박세철

    • 육산 박동국

    • 칠산 유건

    • 팔산 김광선

    • 정산 송규

    일산 이재철(1891~1943)

    그는 당시 팔촌 동생인 이동안을 대종사께 귀의 시켰으며, 이것이 영광군 묘량면 함평 이씨가문에서 수 십명이 출가하여 교단의 창립과 발전에 공헌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산 종사는 특히 화술이 능하여 초기 교단의 대외 간판 역할을 하시었으며 방언공사 당시에 외무를 주로 담당하였다. 은행외교로 총부를 건설할때 미약한 경제토대를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일산 종사는 경제외교와 더불어 법조계(法曹界) 외교도 전담하는 등 초기 당시 외교인으로 소태 산 대종사를 보좌하였으며, 특히 경제계에 탁월한 식견을 가져 초기교단의 상조조합 (相助組合)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교단경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대종사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해에 열반하시었다. 대봉도 법훈.

    ① 초기교단의 외교가 일산 이재철 대봉도는 외교가 능하여 초기 교단의 대외 간판역할을 하였다. 방언공사시 허가 신청의 분쟁이 일어나 큰 곤경에 처했을때 군청에 출입하는 등 뛰어난 식견과 언변으로 동분서주 뛰어서 위기를 면하게 하였으며, 은행외교로 총부를 건설할때 미약한 경제토대를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일산 종사는 경제외교와 더불어 법조계(法曹界) 외교도 전담하는 등 초창 당시 외교인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보좌하였으며, 특히 경제계에 탁월한 식견을 가져 초기교단의 상조조합(相助組合)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교단경제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일산 종사는 1891년 2월 11일 全南 靈光郡 郡西面 鶴丁里에서 부친 이관현(李寬現)선생과 모친 옥타원 김화옥 (玉陀圓 金華玉) 선생의 4남매중 독자(獨子)로 태어났다. 부친은 함평 영광지역 동학(동학(東學)접주(接主)로서 농민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었으며, 모친은 대범하면서도 내명(內明)한 인품을 지닌 요조숙녀로서 법도에 밝았고, 일찌기 가문의 아녀자들에게 胎敎를 가르쳤으며, 대종사 법하에 귀의하여서는 독실한 신심으로 수행에 적공하여 禪力을 얻어 대종사의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일찌기 漢文私塾에 나가 6~7년간을 수학한 일산 종사는 그 후 老母를 모시고 가사에 종사하면서도 새로운 문명에 관심이 높았고 가정생활을 하는데에도 이상을 가지고 진보적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이상에 맞지 않았으며 마음가운데는 항상 이 세상을 바로 잡을 정법의 지도자와 의인(義人)이 없음을 개탄하였다. 그러던 중 원기 원년(1916)4월 사산 오창건대봉도의 인도로 소태산 대종사를 拜見하고 장차 교단창설의 취지를 들은후 積世의 소원이 이루어 지는 듯 환희용약(歡喜踊躍)하여 즉석에서 사제지의(師弟之義)를 맺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원기 원년 대각을 한후 비몽사몽간에 생각한 經名이 金剛經이었다.

    일산 종사는 원기 원년 5월 소태산 대종사의 명을 받들고 영산에서 28km정도 떨어져 있는 佛甲寺,(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소재)에 가서 금강경을 구해 소태산 대종사에게 주기도 했다.)그후로 일산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와 大道를 봉대하는 마음이 날로 간절해지는 가운데 원기 2년(1917)7월26일 교단의 최초 統治團인 男子正首位團이 조직될 때 건방(乾方)단원으로 임명되어 조합의 규정을 성실하게 수행함과 아울러 교단 사업의 기초를 다지는데 헌신 노력하였다.

    저축조합 초기의 경제관계 사무와 외무는 거의 일산 대봉도가 맡아 처리하였다. 원기 3년(1918)28세때에는 간석지 방언공사와 회실(九間道室)건축에 온갖 정성과 혈심을 기울여 대업을 성취하였는데 일산 대봉도는 주로 외무 일과 금전출납 관계사무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소태산 대종사의 직접 지휘를 받으며 동지들과 더불어 흙짐을 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발바닥이 부르트고 어깨와 등이 부어올라 사뭇 못견딜 지경이었다. 차라리 귀한 집 독자가 아니었더라면 진작 흙짐 지는 연습이라도 해두었을 것을 하는 후회도 생겼고, 추운겨울이라 불을 쬐다 솜옷에 불이 붙어도 모르고 불을 쬔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일편단심 무아봉공 그대로였으니 일호의 사심잡념도 없었다.

    일산 종사는 원기 4년(1919)3월26일부터 대종사의 지도를 받아 8인동지들과 함께 창생의 구원을 위하여 혈심으로 기도하였고,마침내 생명희생의 대서원을 올림으로써 천지신명의 감명을 얻어 백지혈인의 이적을 나투었다. 이때에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봉수받은 법명이 이재철이었다. 속명은 재풍(載馮) 혈인기도시 소태산 대종사가 단원을에게 [생사는 인간대사라,만일 조금이라도 자신이나 가정은 물론하고 걱정스런 생각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말하라]고 했을때 효성이 남달리 장했던 일산 종사는 창생을 위하여 자신 한 몸 죽는 것은 여한이 없으나 홀로 계신 모친이 걱정되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일산 종사의 심중을 헤아리고는 [모친의 시봉은 내가 책임질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희생의 결의를 굳게 하였으며, 기도 마지막 날에는 환후중인 모친에게 한약을 지어 인편(人便)에 전하기도 했다.

    ② 봉사가 만져봐도 양반: 일산 종사는 키가 크고 身相이 구족하며 威風이 좋아 [영광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일산 종사는 천성이 온순,정직,賢良하여 누구를 대하나 항상 和氣로웠고 인자겸손하였다. 그러나 중심은 철두철미 대의가 분명하고 강직한 면이 있었다. 일산 종사는 좌담과 외교에 능하였을 뿐아니라 밖으로 신상이 구족하고 안으로 양보의 도가 강하였던 관계로 누구든지 감화를 받았으며,뛰어난 識見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說伏시켰다. 영광지방에서는 이러한 일산 종사에 대해[봉사가 만져봐도 양반]이라며 異口同聲으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성격을 지닌 일산 종사는 평소에는 말이 퍽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옳은 일에는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아랫 사람들의 세정을 일일이 살펴주었고 항상 용기와 희망을 넣어준 자비로운 선진이었다. 후진들이 일산 종사를 대하면 어딘가 모르게 다정다감하여 친부모처럼 간격을 느낄 수 없었으며, 온갖 괴로움이 얼음녹듯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구인기도봉

법계의 인증을 받기 위해서 구인선진이 올랐던 아홉개의 기도봉

영산성지 전경, 왼쪽부터
  • ① 설레바위봉
  • ② 현재 기도하고 있는 상여바위봉 중턱 너럭바위
  • ③ 상여바위봉
  • ④ 옥녀봉
  • ⑤ 현재 영산선학대학교에서 기도하고 있는 변화된 마촌 앞산봉
  • ⑥ 마촌 앞산봉
  • ⑦ 촛대봉
  • ⑧ 장다리봉
  • ⑨ 중앙봉
  • ⑩ 대파리봉
  • ⑪ 눈썹바위봉
  • ⑫ 천기둥 뒷산봉
  • ⑬ 밤나무골봉